삶이야기

일제징용 恨

jeansoo 2011. 8. 15. 20:16

 “일제징용 恨, 언제나 풀리려나…”
 아비규환의 생지옥, 일본 하까다에서의 8개월
 [2005-03-09]

“다시 그때 지옥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혀! 어렸을 때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짓밟힌 한민족아녀? 이젠 한민족의 기상을 일본인들에게 보여줘야 혀!”

 

그 때 기억을 되살리며 치를 떠는 최 옹은 단호히 튼실한 국민성으로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1945년 2월. 22살 청년 최 옹은 운 없게도 특정연령징용대상자에 포함돼 강제 징용됐다.

 

최 옹은 그 때부터 8개월간의 생생한 궤적을 풀어놓는다.

 

당시 징용되지 않기 위해 요리저리 잘 피해 다니기도 하고 발뺌하기도 했지만 역시 나라 잃은 설움은 여실히 그에게 닥쳐오고 말았다.

 

최 옹이 강제징용 되던 때 서천군에서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서천인들은 97명 정도.

 

“한국사람이란 존재가 없었다”는 일제강점기, 최 옹을 비롯한 한국인들은 천안에서 부산으로 이동해 관부연락선이 현해탄을 건너 징용자들을 ‘부려놓던’ 항구, 시모노세키로 건너갔어야 했으나 시모노세키행 관부연락선이 미군 폭격으로 좌초되자 두 번째 연락선을 타고 하까다로 징용됐다.

 

하까다는 당시 일본의 제강(製鋼)산업의 하나였던 대동제강 주식회사가 있던 곳.

 

최 옹은 군속으로 징용됐지만 다행히 대동제강주식회사에서 강제징용 노역자로 생활하게 됐다. 하지만 나라 잃은 자의 설움은 마찬가지였다.

 

전선으로 배치된 강제징용자에 비하면 호강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고.

 

“맞기도 많이 맞고 괄시도 많이 당했지. 생각해봐 일본인들이 징용된 우리들을 사람취급이나 했것어?”

 

최 옹에게 있어 대동제강에서의 생활은 전선의 동료들과 같은 두려움의 극치였다.

 

대동제강 2~3개월 생활부터 매일 되는 미군의 기습적인 폭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생사의 순간이다.

 

“살기 위해 뛰어야 했어. 일본인, 한국인 따로 없었어. 죽느냐 사느냐에 한 문제였으니. 나는 더했지~! 억울하게 잡혀 와서 다시 한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다는 게 참으로 분통터지는 일였거든?”

 

같이 징용됐던 한국인이 폭격으로 옆에서, 앞에서 비명횡사하거나 크게 다쳐 울부짖을 때 부둥켜안고 그렇게 울어본 적 없다는 최 옹.

 

강제징용도 억울한데 내 나라를 되찾아주기 위해 나선 비행기의 폭격에 의해 무참히 피를 토하며 주검이 되던 한국인들의 모습은 차라리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상흔이다.

 

“폭격 이후의 상황은 다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전쟁 이었어”라고 말하는 최 옹은 “살기 위해 일본인같이 생활하고 일본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한다. 폭격 이후 일본인들의 악랄함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배운 일본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어. 일본말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매일같이 일본인들에게 붙잡혀 매맞고 피투성 되기 일쑤였으니~. 여자의 경우 놀림감이었어. 보다 못해 일본인들과 맞붙은 한국인들도 있었으니께”

 

1945년 8월15일. 최 옹을 포함한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은 라디오에서 일본천황의 항복 발표를 직접 듣고도 그 기쁨을 내색조차 하지 못했지만 서로의 눈빛으로 그 기쁨을 주고 받아야만 했다.  

 

한국 귀환선을 타기까지 살기위해 엎드려야 했고, 살기위해 무엇이라도 훔쳐 먹어야 했던 기억을 회상하는 최 옹의 눈에 눈물이 송송 맺혔다.

 

하까다 대동제강에서의 8개월은 기나긴 일제강점기보다 더 지옥 같고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그 기억을 습작하는 최 옹은 “내 생이 끝나야만 이런 역사가 끝날 것이여”라며 나라 바로 세우기를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일본인들을 생각하면 몸서리 쳐지지만 그들의 나라사랑 정신만은 본 받아야 혀. 나라사랑 정신이 우리에겐 부족혀. 바닥난 나라사랑 정신을 바로세울 수 있다면 청와대라도 가서 시위하고 싶어”

 

우베, 홋카이도의 탄광촌으로, 오사카의 군수 공장으로 징용갔던 식민지 조선인들의 한은 광복 60년, 한·일 국교 재개 40년을 맞는 올해도 최 옹의 마음처럼 아직 씻어진 것이 아니다. 

출처 : http://seocheon.newsk.com/bbs/print.asp?category=0&group_name=916&idx_num=2067§io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