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28일 아침 6시 50분. 잠을 자고 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다. 옆에서 자고 있는 마누라를 개우며 "뭐 렌지에 올려놨어? 타는 냄새 나잖아?" 대부분의 마누라들이 가끔씩 깜박하는 경향이 있어 그날도 그런줄 알았다. 투덜대며 마누라가 거실 문을 여는 순간 메케한 연기가 안방으로 몰려 들었다.
순간 " 무언지 빨리 부엌으로 가봐" 하고 소리치며 우리와 함께 자는 초등6년 딸을 깨웠다. 그리고 안방 창문을 열었다. 우리집은 연립주택 1층이라서 딸을 우선 밖으로 내 보낼 생각으로 창문을 연것이 실수였다. 산소 공급이 제대로 안되어 불이 제대로 안타고 있던 순가 내가 창문을 열면서 모든 연기가 나에게로 몰려 들었다. 이 연기를 갑자기 마시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이야기로만 듣던 유독가스가 그렇게 무서울 줄은 진짜 몰랐다.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건강과 체력에 자신이 있었던 나도 그 가스앞에서는 주저 앉을수 밖에 없었다.
이 사진은 현관에서 우측이 부엌, 좌측이 거실, 밝은 유리창이 큰 녀석 방이다.
그 순간 "아! 이래서 죽는 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다시 벌떡 일어서 딸을 부르자 딸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로 뛰어 왔다. 그런데 어딘가에 걸려서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직 새벽에다 앞이 안보여 딸을 찾으러 가려는 순간 다시 일어나 창가 쪽으로 왔다. " 나연아 빨리 밖으러 나가"라고 소리치자 창턱이 높아서 못 넘어 간다는 것 이었다. 딸을 뒤에서 안고서는 함께 창틀을 넘어가 뛰어 애렸다. 그리고 "나연이 밖에서 기다려" 하고는 중학교 3학년 큰아들이 자는 방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집 구조는 후면에 안방, 거실, 큰아들방 앞면에 부엌과 현관, 작은녀석의 방이 있는 구조다. 안방에서 중간에 거실까지 가면서 큰놈을 불렀다. 그런데 거실로 가는 순간 다시금 생각없이 일어서 가자가 유독가스를 마시고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이 가스는 눈도 못뜨게 할뿐만 아니라 일반 공기가 전혀 없는 아주 순도 100%의 맹독성으로 순간 실신이 가능한 가스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큰녀석을 부르며 거실에서 부엌쪽으로 갔다. 그래야 큰아들방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안방에서 공급되는 공기가 불을 안방쪽으로 빠르게 번지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는게 점점 힘들어 졌다.
지금 위로 보이는 사진중 밑이 내가 기어다닌 자리이고 거실에서 부엌으로 나오는 통로이다. 저 안으로 들어가 좌측이 안방이고 밖으로 나와 바로 우측이 큰녀석 방이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다시 기어서 밖으로 나갔다. 큰 녀석 방 뒤편에도 창문이 있었기에 창을 깨고 그 곳으로 진입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밖으로 나가 돌을 찾으니 원래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 속담처럼 진짜 없었다. 일단 주먹으로라도 깨야 겠다는 생각에 뒤로 물러나 뛰어 오르려는 순간 큰 녀석이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세상을 다 얻은듯 희열 + 고마움이 들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이 큰녀석이 자고 있던 방이고 뒤편이 창문이다.
그리고 "동생을 챙겨"라고 하면서 다시 안방을 통해 이제 마누라가 걱정이 되어 찾으러 들어갔다. 그때는 이미 안방까지 화염이 도달하여 도저히 진입할 길이 없어 안방에서 자던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다시 기었다. 그런데 이미 거실의 쇼파에 불이 붙어 부엌쪽으로 갈 길이 없었다. 내가 할수 있는건 무조건 "여보"를 계속 외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그 순간 엄마없이 아이들을 키운다 생각하니 갑자가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엌쪽에 누워있는 마누라의 그림이 떠 올랐다. 이 사진은 현관에서 보면 바로 우측이 부엌, 약간 죄측 뒤가 큰녀석방, 좌측이 거실이다.
이렇게 죽게 버려둘수 없다는 생각에 앞으로 더 갈려는 순간 현관 밖에서 마누라가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치는게 들리지 않은가. 아! 다시금 고마움에 + 감격 + 안도에 뒤로 돌아 나올려는데 얼굴을 가린 긴 이불이 걸려서 다시 뒤돌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순간 빨리 밖으로 나갈 욕심에 일어서는 순간 다시 가스를 마시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가슴이 조여질듯 아프고 눈을 뜰수가 없고, 숨도 못 쉬는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는 "내가 여기 있으면 죽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마누라 얼굴이 마구 스치면서 심지어는 내 영정앞에서 울고있는 그림까지 그려졌다. "벌어놓은 것도 없이 내가 가면 안되지.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기었다. 안방에 창문에 도달해서 마시는 공기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서너번 심호흡을 하면서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그리고 안방 창문에서 뛰어 애렸다. "이제 다 살았다" 라고 안도하면서.....
그런데 오늘 새벽에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처남이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아뿔사!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뛰어 들었다. 이미 안방도 천정에는 파란 불꼿이 커텐을 두르는 것 처럼 너울너울 불이 붙어서 창쪽으로 오고 있었다. 감상할 시간이나 두려움 보다는 빨리 큰 녀석의 방에 가서 술에 취해 잠든 처남을 깨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기어가는데 이제는 거실입구도 못가고 말았다. 이미 거실은 밑에까지 불이 붙어 도저히 갈수 없는 상황이라 잠시 망설이며 갈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순간 큰녀석 방으로 거꾸로 다시 창문을 타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는 뒤돌아 기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나오는 순간 애들을 데리고 걸어가는 처남이 보이지 않은가! 고마움 + 분노 + 안도등등......... 그 날은 올 겨울중 가장 추운 날이다. 팬티와 런닝만을 거치고 나온 우리는 다시 추위와 싸워야 했다.
다행이 옆집에서 옷을 주고, 승용차에 시동을 켜주어 애들을 차안에서 몸을 녹이게 했다. 그리고 주변에 계신 많은 분들이 자기 집으로 가서 며칠 묵으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불속에서 진한 가족애를 느낀 가족아닌가! 우린 가족이다! 절대 헤어질수 없다! 는 마누라의 말에 경포에 콘도를 얻어 그 날부터 함께 하였다. 그리고 조사나온 소방관 아저씨 왈! 이런 현장에서 한명도 문제없이 전부가 살았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 사진은 최초 발화지점인 부엌쪽 사진입니다.
그리고 애들을 위해서 조촐하지만 아는 몇분과 조촐한 삼겹살 파티를 했다. 하루종일 긴장의 연속에서 샤워하고, 삼겹살에 소주한잔을 걸치고 피곤해서 먼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긴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뒤, 가슴이 조여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병원 소생실에 있었다. 연기를 많이 마셔 일산화탄소양이 혈액속에 증가하고, 긴장이 풀어졌을때 오는 안도감, 뒤쪽 창문이 족히 2미터는 되는데 거기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어깨 근육이 늘어남에 따른 아픔등... 119구급차 속에 혈압이 80정도까지 떨어졌다니...... 다행이 그날 아무일 없이 집으로 왔고 이제느느며칠 지나면 괜찮을 것 같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몇가지 소중한 경험을 했다. 첫번째 가족의 소중함 두번째 화재예방 + 관심 = 절대 겨울에 많은 전열기 사용금지. 세번째 마누라의 소중함 네번째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시는 소방대원님들 감사합니다(세금에 소방세를 신설해서 라도 도와 드릴수는 없을까?)
이 일은 앞으로 내가 생을 살아가면서 아픔과 동시에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수 있을 것 같다. 다시한번 우리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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