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정된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올 1월부터 본격 적용·시행됨에 따라 연면적 5,000㎡ 이상, 16층 이상
아파트는 작동기능점검 상반기 1회 이상 및 종합정밀점검 연 1회 이상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일선 아파트 관리현장은 지난해 말부터
적용대상 및 점검방법 그리고 비용부담 등과 관련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어느 하나 명확한 기준이 없고 소방안전협회, 관할 소방서 등 관련부서
담당자들 또한 민원사항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못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법이 시행된 지 5개월째를 맞은 현 시점에도 이러한 논란은
계속되고 민원 또한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지난 10일 소방방재청 관계자와의 면담을 통해 소방시설 안전점검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짚어봤다.
아파트 입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대명제하에 점검수수료와 실시횟수의 많고 적음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수명이 긴 좋은
제도로 남으려면 소방안전상품을 구입하는 입주민이 손해와 혼란을 겪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준선을 제시해야 옳고, 시행착오에 따른 혼선을 줄이려는
주무관서의 탄력적인 여론수렴의 자세도 요구된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의 화재발생건수는 총 1,748건으로, 약 34억6,000만여 원의
재산손실과 사망 34명, 부상 182명 등의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안전을 위한 정책이라면 백번을 강조한다해도 지나침이 없다. 허나 이러한
제도들이 실시되기에 앞서 대상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그 실효성은 높아질 것이다. 허점투성이의 제도를 보완하고 개정하는데 허송세월을
할 바에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의 남발은 졸속행정·탁상공론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수수료, 지역·업체별 천양지차
방재청, 뜬구름 식 사전조사
논란의 쟁점 중의 하나는 측정이
불가한 점검비용의 발생이다. 종합정밀점검 대상 아파트는 소방시설관리업체에 점검을 위탁함으로써 일정 점검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현재 이
점검수수료에 대한 표준이 제시되지 않아 지역별, 업체별로 천차만별이다. 업체 수 또한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민간화한
만큼 수요공급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이다.
서울의 K업체에 따르면 500가구 기준으로 소방관리사 1명과 특급기술사 2명이 투입돼
2일간 점검을 펼치며, 이 경우 가구당 약 8,000원의 점검수수료를 부담시킨다고 한다. 경기도의 3개동 240가구의 소규모 아파트 역시 최근
약 8,000원선에 위탁점검계약을 맺었다. 이 또한 가구당이 아닌 ㎡당 계산해 가구당으로 산정한 금액으로, 가구당인지 ㎡당인지 구분이 애매한
실정이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1만원에서 1만3,000원으로 널뛰기를 한다. 소방방재청은 같은 조건에 가구당 4,000원에서 6,000원선을
예상하고 있었다. 올해 초 ㎡당 200~500원 수준이던 점검수수료는 주택관리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최근 100원대로 내려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달 27일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질의한 “적정 점검수수료 기준 제시 요구”에 대해 소방방채청은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20조의 규정에 따라 ‘엔지니어링 사업대가 기준 중 실비정액 가산방식’으로 산정토록 하고, 점검비용은 소방시설 종류·건축물
구조 등을 고려해 당사자 간의 계약에 따라 정하라”는 답변을 줬다.
한국엔지니어링진흥협회에 확인한 결과, 소방시설관리업은 엔지니어링
사업대가 기준에 해당하지 않으며, 소방설비분야는 언급돼 있긴 하지만 이 또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는 상태였다. 다만 소방안전협회 측에서 업무구분을
요청하면 건축부분에 요율을 정해 단가를 결정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업무구분 요청은 필요치 않으며 대부분의
엔지니어링업체들이 이 기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소방시설관리업체도 이를 준용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 엔지니어링사업대가 기준
부칙의 ‘건설부문 요율’은 설계 및 시공 분야로 관리점검업체와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일 것이다. 더구나 동 기준 제20조에 따르면 이 노임단가는
1일 8시간, 1개월의 일수로 통계법에 의해 조사된 것이다. 또한 동 기준 제3장의 실비정액가산 방식은 직접인건비, 직접경비, 제경비, 기술료
등으로 나눠져 있다. 이를 준용한다면 업체 임의대로 수수료를 부풀리고, 공가·부재 가구 등으로 인해 정해진 기간에 소방안전점검을 마치지 못한다면
원칙적으로 점검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공사감리 업무에 해당될 수 있으며, 기간 내에 점검을
끝내야 비용 상승요인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하고 있다. 이는 소방방재청의 점검수수료와 관련한 사전조사는 전무했으며 업계 귀동냥
수준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점검의무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비용부담주체·과태료대상자 모호
점검수수료의 적정기준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그 비용의 부담주체도 모호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분양아파트의 경우 세입자와 소유자,
임대아파트의 경우 임차인과 임대사업자 또는 소유자 중 누가 점검수수료를 내야하는지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관련법에 점검의무자는 소유자,
점유자, 관리자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건설교통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점검수수료는 소유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곧이어 “소유자가 1순위이고 나머지 주체도 점검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는 엉성한 태도를 취했다.
이에 앞서
소방안전점검의 위탁계약은 관리주체와 소방시설관리업체 간에 맺어지고 계약 내용에 따라 점검비용은 일괄 지급될 것이다. 이럴 경우 점검의무자가
소유자라면 세입자가 대납하는 형국으로 장기수선충당금 형식을 띠어 이는 건설교통부와 논의대상이다. 또한 미납가구에 대한 부분까지 선량한 타
입주민이 부담하는 상황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처럼 법에 주체를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는다면 향후 부실 또는 미 점검 시 과태료부과대상자가 누구냐를
놓고도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 뻔하다.
서울의 D업체에 따르면 한 임대아파트의 경우 이와 관련해 임차인과 임대사업자 간에 두 달여 넘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임대사업자가 부담하는 것으로 힘겹게 합의를 봤다고 한다. 이렇듯 현재 임차인이나 세입자 등은 “소방점검은 건물의 안전성
확보와 소방시설의 유지관리 차원에서 소유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임대사업자는 “점검대상물을 점유하고 있는 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
사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임차인이 부담해야 한다”며 서로 엇갈리고 있다.
한편 부실 점검에 따른 피해를 점검업체가 보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관련 세칙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방시설관리업체들이 서울지역 등 대도시에 편중돼 있어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독점 내지는 몇 개 업체들 간 담합의 소지가 농후하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일부지역에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시인했다.
그렇다면 부실과 부정의 소지를 제거하기 위해 그에 따른 철저한 관리·감독 행위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에 소방방재청은 상시감독체제를 구축,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현재 아파트 관리현장은 승강기정기검사나 건축물정밀점검 등 각종 안전검사들이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비용주체 등을 놓고 논란이 많다. 가뜩이나 부실한 법들로 시끄러운 실정에 소방관련법 마저도 ‘일단 해보자’는 식으로 시행된다면 절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업무지침, 근거법 오류 인정한 것
유예·보완 후 적용해도 늦지 않아
그리고 소방방재청이 ‘아파트 종합정밀점검 실시 방법에 관한 업무처리’라는 제목의 지침을 하급기관으로 시달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 제도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알 수 있다.
이 지침에는 “거주자 부재 또는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로 가구 내 점검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공용부분에 대한 종합정밀점검 실시를 원칙으로 하되, 가능한 가구는 점검하고 미 실시 가구는 사유를 기재하고 관계인의 서명을 받을
것”이라고 돼있다. 이것은 전용부분 즉 가구별 점검은 보류 내지는 제외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현실적으로 공가·부재 가구에
대한 점검이 힘들다는 인식 하에 내린 지침으로,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점검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강화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안전점검의 근거가 되는 개정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오류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가구 내 점검 미
실시에 따른 과태료부과 역시 소유자가 됐건 점유자가 됐건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 지침을 접한
소방시설관리업체들는 계단, 복도, 관리동, 주차장 등 공용부분에 대해서만 점검을 실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상가시설마저도
점검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업체도 있었다. 이에 소방방재청은 “업체들이 이 지침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분명히 지침에 가능한 가구는 점검을
실시할 것을 통보했다”라는 식으로 해명했다.
‘준공연수 상관없이 동일적용’
‘점검업체·자격자 확충’이 원칙
소방방재청은 점검대상의 준공연수와 상관없이 일괄적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화재위험요인은 가연물질 등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의 연구·분석이 힘들고 점검대상을 연수로 구분 짓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소방관리 및 관련활동이 우수한 모범단지에
대해서 인센티브를 적용, 점검을 면제해 주는 기존 방침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소방방재청은 점진적으로 종합정밀점검대상을
15층 이하로 낮춰 강화·확대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한 소방방재청의 기본원칙은 “점검업체 및 자격자 확충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2년마다 치러지던 자격시험을 매년 실시하고 올해 200여명 충원을 시작으로 4,000여명 정도의 인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소방방재청은 “서울에 편중돼 있는 점검업체들이 지방까지 담당하면 된다. 앞으로 수요에 맞게 자격인원을 대폭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작동기능점검과 종합정밀점검이 모두 상반기에 해당하는 경우 이를 유동적으로 분산·실시토록 하는 개정안을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작동기능점검 시 소방장비 사용여부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의 정책서비스 ‘절실’
그간 아파트 관리현장은 부실한 근거법들로 인한 절름발이 제도의 양산으로 각종 민원 및 분쟁 그리고 다툼이 끊이질 않아 왔다. 표준도
제시하지 못하고 대상주체도 불분명하다면 이는 아파트 관리현장의 또 하나의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모든 제도가 초기 시행에 있어 오류가
발생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입주민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거창한 제목으로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너그러움과 인내심을 베풀 아파트 입주민
또한 드물 것이다. 정부 및 주무관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정책서비스를 제공하고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