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야기

[스크랩] 행복하다는 말을 처음 해 봤습니다

jeansoo 2006. 9. 16. 20:17

결혼한지 어느 덧 만 4년이 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결혼을 해 이것 저것 안정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서둘러 한 결혼이었죠.

 

오늘 내리는 비를 보면서 갑자기 예전 메일들을 꺼내 봤습니다. 결혼전에 아내와 주고 받았던 메일들입니다. 지금 보면 민망한 얘기들을 가슴 절절하게 써서 보냈더군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 보낸 메일은 없더군요. 결혼 후 서로 주고 받은 메일은 생일에 자동발송으로 등록해 놓은 카드메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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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직장도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돈버는 일보다는 다른 일을 먼저 하고 싶어서 결혼을 서두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결혼은 좀 더 안정된 후에 하고 싶었죠. 집에서 학교만 졸업하면 해도 좋다고 간신히 허락을 받았던 일이라 아쉬움이 컸습니다.(그런데, 오늘 다시 찾아본 메일을 보니 그렇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결혼 후에는 가장이 됐다는 책임감때문에 원래 하고 싶었던 일 대신에 간신히 들어갔지만 다니기 싫은 회사를 억지로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결혼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고 항상 투덜거렸죠. 억지로 다니다 보니 회사도 그새 몇차례 옮겼습니다.

 

술먹고 들어와서 헤어지자는 말도 여러차례 했고, 인사불성이 되서 아내가 찾아나선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었던 다른 일을 시작할려고 할 때 예상치 못한 아이가 생겼습니다. 왼쪽 위에 보이는 저 아이입니다. 지금은 너무 사랑스럽고 안 낳았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사실 앞이 깜깜했습니다. 솔직히 지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여러군데에 걸친 회사 생활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 사이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어느덧 우리나이로 4살이 됐습니다.

 

전 회사에 매여서 매일 늦고 쉬는 날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답답하면 술 마시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결혼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고 한탄을 하면서요. 아이가 태어나서 한 1년여동안은 밤에 제 얼굴을 제대로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다툼도 많았고, 저는 매번 회사 핑계대며 집안일과 육아 등에 눈감고 지냈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데"라며 오히려 화를 냈죠.

 

아내는 다툴때마다 저에게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이해하는데 연애 때만큼만 자기한테 해주면 안되겠냐고 했습니다. 맛있는 거 사주고 선물해주고 그런 것말고 연애 때만큼만 자기한테 부드럽게 얘기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고요.

 

전 그말이 싫었습니다. 결혼은 현실인데 연애때와 같은 마음으로 어떻게 그런말을 할수 있겠냐고 했죠. 그렇게 2년여를 산 것 같습니다.

 

그 새 또 회사를 옮겼고, 아내는 말없이 따라줬습니다. 회사가 지방이지만 따라와줬습니다.

 

이사를 온지도 한달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며칠 전 퇴근 후 같이 거실에서 TV를 보며 앉아 있는데 아이가 제 앞에서 새로 간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것들을 보여줬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컸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나 행복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놀라더군요. 결혼 후 행복하다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하네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던 같았습니다. 제가 행복하다고 하니 아내도 행복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도 아내에게서 결혼 후 행복하다는 말을 처음 들어본 것 같습니다.

 

오늘 꺼내본 메일을 보니 결혼해서 같이 행복하자는 말이 많았는데 제가 참 나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했었는데..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나만 생각하고 계속 다른 이유로 너무..

 

해서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린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데 이렇게라도 적어봅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사랑한다는 말을 아내에게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결혼 후 아내에게 그 말도 한번 안했었다고 아내가 그날 일러주더군요.

출처 :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승은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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